전체 글 (77) 썸네일형 리스트형 월급봉투에서 디지털 지갑까지 — 돈의 형태가 바뀌면 삶도 바뀐다 월급봉투를 손에 쥐던 그 시절예전에는 월급날이 한 달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회사에서 직접 건네주는 월급봉투를 받아 드는 순간, 그 한 달 동안 흘린 땀과 수고가 한꺼번에 보상받는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봉투 안에 차곡차곡 담긴 현금을 세어보는 그 짧은 순간은 단순히 돈을 확인하는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의식이었다.집에 돌아오는 길은 여느 날보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문을 열면 가족들이 다른 날보다 더 반갑게 맞아주었고, 가장으로서 작은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 날만큼은 어깨를 으쓱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외식을 하거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사들고 들어오는 것도 월급날의 소소한 낙이었다.. 사람에게 얼마만큼이면 충분한가 — 자족(自足)하는 삶에 대하여 어느 마을에 땅을 늘려가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으로 삼는 소작농이 있었습니다. 그는 땅을 많이 가지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밤낮없이 일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좀처럼 늘지 않는 땅에 늘 아쉬움을 품고 살았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멀리 떨어진 마을에 넓고 비옥한 땅을 아주 싼값에 살 수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조건은 단 하나, 동이 틀 때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면 그 하루 동안 걸은 땅 전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주저 없이 전 재산을 정리하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다음 날 아침, 그는 온 힘을 다해 달렸습니다. 더 넓은 땅을 차지하겠다는 욕심에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고, 해가 기울기 시작했을 때에야 뒤늦게 방향을 돌렸습니다. 해가 거의 질 무렵, .. 60대 유튜버로 1년, 구독자 303명의 솔직 후기 — 조회수보다 중요한 것 유튜브 채널을 만든 지 1년이 지났다.구독자는 303명이다.유튜브에서 303명은 많은 숫자가 아니다. 수십만, 수백만 구독자를 가진 채널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303명은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주변에서 "아직도 구독자가 그것밖에 안 돼요?" 하는 말을 듣기도 했다.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부끄럽지 않다.오히려 이 숫자가 자랑스럽다. 왜 그런지, 1년을 돌아보면서 솔직하게 써보려 한다.왜 유튜브를 시작했나처음 유튜브 채널을 만든 건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배운 것을 기록하고 싶었다. ChatGPT를 처음 써본 날, SUNO로 노래를 만든 날, IoT로 캠핑장 전등을 제어한 날. 이런 것들을 나 혼자 알고 끝내기가 아까웠다. 비슷한 나이대의 분들이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라는 걸 알았으면 했다.그.. 동네 할머니의 스마트폰 선생님이 된 캠핑장 사장 — 배운 것을 나누는 기쁨 처음엔 그냥 한 번만 도와드리려고 했다.캠핑장 근처에 사시는 칠순 할머니가 어느 날 찾아오셨다.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계셨는데, 표정이 난처해 보였다. "저기, 이거 좀 봐줄 수 있어요? 아들이 사줬는데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서."카카오톡이었다. 아들이 설치는 해줬는데, 어떻게 메시지를 보내는지 모르신다고 했다. 잠깐이면 될 것 같았다. 옆에 앉아서 알려드렸다. 문자 입력하는 법, 사진 보내는 법, 받은 메시지 확인하는 법.할머니가 처음으로 아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들아 잘있냐 엄마다." 띄어쓰기도 없고 맞춤법도 엉망이었지만, 할머니는 그 화면을 보면서 눈가를 훔치셨다."고맙습니다. 이제 아들이랑 연락할 수 있겠네요."그날 이후 내 삶이 조금 달라졌다.소문은 빠르다할머니가 다음 날 또 오셨다. 이번.. TV를 없앤 날, 가족 대화가 시작됐다 — 우리 집 거실에 책꽂이를 놓은 이유 거실에서 TV를 없앤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결정한 일이 아니었다.오래전부터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가족이 거실에 모이면, 자연스럽게 TV 앞에 앉게 됐다. 아내는 드라마를 보고, 아들은 예능을 보고, 나는 뉴스를 보고 싶어 했다. 채널 하나를 놓고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각자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각자 따로 있었다.어느 저녁 밥을 먹으면서 아들에게 "오늘 학교에서 어땠어?" 하고 물었다. 아들은 "그냥요"라고 했다. 그게 다였다. 더 묻고 싶었지만 TV에서 뭔가 재미있는 장면이 나왔고,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아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TV를 없애기로 한 날.. 까치밥을 남기는 마음 — 모든 것을 다 가지지 않는 삶의 철학 캠핑장 한쪽에 감나무 두 그루가 있다.가을이 되면 감이 붉게 익는다. 보기 좋고, 먹으면 달다. 첫 해에는 다 따서 먹었다. 감 따기가 생각보다 힘들어서 끙끙거리며 올라가서, 닿지 않는 위쪽 것들은 장대로 쳐서 떨어뜨렸다. 그렇게 한 알도 빠짐없이 다 챙겼다.그 이듬해 겨울이었다. 캠핑장을 손보다가 감나무 위를 올려다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예전엔 까치들이 겨울에도 와서 나뭇가지 사이에 앉아 있곤 했는데, 그해 겨울엔 한 마리도 오지 않았다.그제야 생각났다. 까치밥.까치밥이라는 오래된 지혜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감을 딸 때 꼭대기에 몇 개를 남겨뒀다. 겨울에 먹을 것이 없는 새들을 위해서였다. 그 남겨둔 감을 까치밥이라고 불렀다.다 갖지 않는 것. 나누기 위해 일부를 남겨두는 것. 그 오래된 풍습이 참 .. 선의로 한 일이 오해받을 때 — 내가 공정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분명히 잘해주려고 한 일이었다.팀에 새로 들어온 직원이 있었다. 열심히 하는 친구였는데, 업무 속도가 좀 느렸다. 다른 팀원들이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 직원이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적응할 수 있도록 일부러 비교적 여유 있는 업무를 먼저 맡겼다. 잘 적응하면 점차 더 많은 일을 주려는 생각이었다.그런데 며칠 후 다른 팀원이 나를 찾아왔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과장님, 저한테는 왜 그렇게 일을 많이 주시면서 쟤한테는 왜 저렇게 쉬운 일만 줘요? 불공평한 거 아닌가요?"한 방 맞은 것 같았다. 배려가 불공평으로 보인 것이다.선의가 오해받는 순간일을 하다 보면 이런 순간이 생각보다 많이 찾아온다.상대를 배려해서 한 말이 상처가 되기도 하고, 도우려고 나선 행동이 간섭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공평하게.. 선배가 퇴직 전날 알려준 "자기 긍정의 기술" — 남의 인정보다 내 인정이 먼저 퇴직을 하루 앞둔 선배가 나를 불렀다.같이 밥이나 먹자고 했다. 근처 식당에 가서 소주 한 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 선배는 30년 넘게 회사를 다니며 성실하게 일한 사람이었다. 잘나지는 않았지만 흔들리지도 않았다. 그런 선배가 마지막 날 저녁 나를 부른 이유가 궁금했다.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선배가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나는 평생 남한테 잘 보이려고 살았어. 그게 후회야."나는 가만히 들었다."남이 인정해주길 기다리다 보면, 정작 내가 잘한 것도 모르고 지나치게 돼. 그게 가장 아깝더라고."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그 말이 오래 머릿속을 맴돌았다.남의 인정을 기다리는 함정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평가를 의식하게 된다. 상사가 내 보고서를 어떻게 볼지, 동료.. 이전 1 ···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