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26. 08:23ㆍ카테고리 없음
분명히 잘해주려고 한 일이었다.
팀에 새로 들어온 직원이 있었다. 열심히 하는 친구였는데, 업무 속도가 좀 느렸다. 다른 팀원들이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 직원이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적응할 수 있도록 일부러 비교적 여유 있는 업무를 먼저 맡겼다. 잘 적응하면 점차 더 많은 일을 주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다른 팀원이 나를 찾아왔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
"과장님, 저한테는 왜 그렇게 일을 많이 주시면서 쟤한테는 왜 저렇게 쉬운 일만 줘요? 불공평한 거 아닌가요?"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배려가 불공평으로 보인 것이다.
선의가 오해받는 순간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순간이 생각보다 많이 찾아온다.
상대를 배려해서 한 말이 상처가 되기도 하고, 도우려고 나선 행동이 간섭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공평하게 하려고 한 결정이 한쪽에게 차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선의로 한 일이 오해받을 때, 그 황당함과 억울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그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나는 그날 그 팀원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새 직원이 아직 적응 중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렇게 배분한 것이고, 적응이 끝나면 균등하게 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 배려가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점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그건 내 실수라고 했다.
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그냥 이유도 없이 그러는 줄 알았어요."
설명 한 번으로 오해가 풀렸다. 하지만 그 일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배려는 설명이 필요하다
그날 이후 나는 이것을 배웠다. 배려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상대가 맥락을 모르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특히 조직 안에서는 더 그렇다. 누군가를 특별히 대우하면 다른 사람 눈에는 편애로 보인다. 누군가에게 더 어려운 일을 주면 차별로 보인다.
해결책은 투명하게 이유를 말하는 것이다.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해도 된다. 하지만 "왜 이런 결정을 했는가"를 관련된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하면, 오해가 생길 여지가 크게 줄어든다.
그 이후로 나는 업무 배분을 할 때 이유를 같이 말하는 습관을 들였다. "이번 이 프로젝트는 네가 가장 잘 맞을 것 같아서." "이건 경험이 필요한 일인데, 네가 한번 해봐야 성장할 것 같아서." 이유 한마디가 많은 오해를 막아준다.
그럼에도 오해가 남을 때
설명을 해도 오해가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아무리 진심을 말해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 또는 상황 자체가 복잡해서 오해를 완전히 해소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럴 때 나는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한다.
"나는 공정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으면, 나는 거기서 멈춘다. 상대가 오해하든 말든, 내가 공정하게 행동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의 오해를 다 풀어주려고 하다 보면 정작 해야 할 일을 못 하게 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내 행동이다. 남의 해석은 내가 통제할 수 없다. 그러니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내 행동을 공정하게 하는 것이지, 모든 사람이 그것을 공정하다고 봐주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 구분이 직장 생활을 버티게 해준 중요한 원칙이었다.
배려가 오해받은 또 다른 순간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캠핑장을 찾아온 손님 중에 혼자 온 중년 여성이 있었다. 텐트를 치는 게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서 내가 먼저 다가가서 도움을 드렸다. 텐트 폴대 연결이 헷갈리신다고 해서 옆에서 같이 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후기에 이런 내용이 올라왔다. "캠핑장 사장이 혼자 온 여성한테 왜 그렇게 들러붙는지 불편했다."
읽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도움을 드리려 한 것이 불편함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억울했다. 정말이지 순수한 마음으로 도운 것이었는데. 하지만 그 손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됐다. 혼자 온 여성에게 낯선 중년 남성이 먼저 다가와서 옆에 있는 것이, 아무리 선의라도 불편할 수 있다.
내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을 더 먼저 고려했어야 했다. 그 이후로 나는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손님에게는 먼저 물어본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이 한마디를 먼저 하고 기다린다. 요청이 오면 돕는다.
배려도 방식이 있다.
오해와 함께 사는 법
살다 보면 오해는 피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행동해도, 상대방의 맥락과 경험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오해를 받지 않는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오해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 그리고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배우느냐다.
팀원이 찾아왔을 때 변명부터 하지 않았다. 내 실수를 먼저 인정했다. 그랬더니 대화가 부드러워졌다. 캠핑장 후기를 읽고 억울했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이해가 됐다. 그래서 방식을 바꿨다.
오해는 나를 더 정교하게 만드는 피드백이기도 하다.
내가 공정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책에서 나는 이 챕터를 "선의와 평가 사이"라고 이름 붙였다.
선의와 평가 사이에는 언제나 간격이 있다. 내가 선의로 한 일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이상적인 경우이고, 늘 그렇지는 않다. 선의로 한 일이 오해를 받기도 하고, 심지어 나쁜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럴 때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공정했는가? 내 행동에 부끄러운 의도가 있었는가?"
그 질문에 "아니다"고 답할 수 있으면, 나는 마음을 놓는다. 오해는 오해이고, 내 행동은 내 행동이다. 둘은 다른 것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내가 나를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그게 선배가 퇴직 전날 소주 한 잔을 앞에 두고 내게 해준 말의 다른 버전이기도 하다.
내가 공정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