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26. 08:22ㆍ카테고리 없음
퇴직을 하루 앞둔 선배가 나를 불렀다.
같이 밥이나 먹자고 했다. 근처 식당에 가서 소주 한 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 선배는 30년 넘게 회사를 다니며 성실하게 일한 사람이었다. 잘나지는 않았지만 흔들리지도 않았다. 그런 선배가 마지막 날 저녁 나를 부른 이유가 궁금했다.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선배가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평생 남한테 잘 보이려고 살았어. 그게 후회야."
나는 가만히 들었다.
"남이 인정해주길 기다리다 보면, 정작 내가 잘한 것도 모르고 지나치게 돼. 그게 가장 아깝더라고."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그 말이 오래 머릿속을 맴돌았다.
남의 인정을 기다리는 함정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평가를 의식하게 된다. 상사가 내 보고서를 어떻게 볼지, 동료가 내 발표를 어떻게 생각할지, 연말 인사고과에서 어떤 점수를 받을지. 그 시선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잘한 것'의 기준이 내 안이 아니라 밖에 생긴다.
"상사가 칭찬하면 잘한 것, 지적하면 못한 것."
이게 내면화되면 무서운 일이 생긴다. 스스로 잘했다는 걸 알아도, 누군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확신이 서지 않는다. 반대로 스스로 부족했다고 느껴도, 상사가 칭찬하면 그냥 넘어가게 된다. 자기 평가 기준이 사라지는 것이다.
선배는 그 함정에 30년을 빠져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퇴직하는 마지막 날, 그게 가장 아쉽다고 했다.
자기 긍정이란 무엇인가
자기 긍정은 자만이 아니다. 근거 없이 "나는 최고야"라고 믿는 게 아니다.
자기 긍정은 자신이 한 일을 스스로 정확하게 평가하는 능력이다. 잘한 건 잘했다고 인정하고, 부족한 건 부족했다고 인정하되, 그 판단의 주체가 '나'인 것. 남의 시선이 아니라 내 기준으로 내 행동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 선배의 말을 들은 뒤, 나는 작은 습관을 하나 만들었다.
하루를 마치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내가 잘한 게 하나라도 있는가?"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 어려운 전화를 먼저 걸었다면 잘한 것이다. 짜증이 났지만 참고 듣기만 했다면 잘한 것이다. 모르는 게 있어서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물어봤다면 잘한 것이다. 그것을 스스로 알아주는 것, 그게 자기 긍정의 시작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칭찬이 외부에서만 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고래가 조련사의 칭찬이 없을 때 춤을 못 춘다면, 조련사가 없는 바다에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 진짜 힘은 조련사 없이도 자신의 방향을 아는 데서 나온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내가 관찰한 것이 있다. 오래 버티는 사람, 진짜 실력을 키우는 사람들의 공통점이었다. 그들은 칭찬을 좋아하되 칭찬에 의존하지 않았다. 지적을 받아들이되 지적에 무너지지 않았다. 스스로의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배웠다. 남의 평가는 참고 자료일 뿐, 최종 심판관은 내가 되어야 한다.
퇴직 후에 더 필요한 능력
퇴직하고 나면 이 능력이 더 절실해진다.
직장에 있을 때는 어떻게든 평가가 온다. 인사고과, 상사의 반응, 팀 분위기.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외부에서 피드백이 들어온다. 그런데 퇴직하면 그 피드백이 사라진다. 아무도 나의 하루를 평가해주지 않는다. 오늘 뭔가 배웠는지,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스스로 알아주지 않으면 그냥 지나간다.
나는 캠핑장을 운영하면서 이 점을 더 실감했다. 손님이 만족했는지는 가끔 후기로 알 수 있지만, 내가 오늘 더 성장했는지는 스스로 물어봐야 안다.
그래서 지금도 하루를 마치며 묻는다. "오늘 하나라도 배웠는가? 오늘 하나라도 더 잘할 수 있는 걸 발견했는가?"
그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날이 좋은 날이다. 거창할 필요가 없다. 유튜브 편집에서 새로운 기능을 알았거나, 손님과 대화하면서 몰랐던 것을 배웠거나, 오늘 쓴 블로그 글이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졌다는 느낌. 그것으로 충분하다.
자기 긍정이 다음 도전을 만든다
자기 긍정의 가장 큰 효과는 도전을 계속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내가 한 일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으면, 잘 안 됐을 때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번엔 안 됐지만,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이 다음 시도를 가능하게 한다.
ChatGPT를 처음 배울 때 결과가 마음에 안 들었다. 여러 번 했는데 내가 원하는 게 나오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이런 거 못 하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했다면 멈췄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방법이 틀렸을 뿐, 다음엔 다르게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그게 자기 긍정이다.
용접을 배울 때도, IoT를 설치할 때도, 유튜브 채널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늘 안 됐다. 하지만 매번 "이번에 안 됐다고 내가 못 하는 사람인 건 아니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렇게 계속했다.
선배에게 배운 것
그 선배는 퇴직 후에 어떻게 지낼까 가끔 궁금하다. 연락이 끊겨서 알 수 없지만, 마지막 날 저녁 소주 한 잔을 앞에 두고 한 그 말이 내게 큰 선물이 됐다.
"남의 인정을 기다리지 마. 네가 먼저 네 자신을 인정해줘."
30년을 일하고 나서 깨달은 것을, 나는 그날 저녁 미리 받았다. 그래서 퇴직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고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었는지 모른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구독자가 많지 않아도 괜찮다. 조회수가 낮아도 괜찮다. 내가 오늘 배운 것을, 내가 오늘 만든 것을, 내가 먼저 알아주면 된다.
그게 전부다. 그게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