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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설계와 현장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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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지 하나로 배운 감사의 철학 — 80년대 직장인이 전하는 삶의 지혜 메타 설명: 80년대 자동차회사 총무팀에서 겪은 화장지 일화를 통해 배운 '결핍이 주는 역설적 교훈'과 감사한 삶의 태도를 나눕니다. 지금 삶이 팍팍하게 느껴진다면 꼭 읽어보세요. 군 제대 후 처음 발을 디딘 직장, 그리고 낯선 현실1980년대 초, 군 생활을 마치고 처음 취업한 곳은 국내 자동차회사의 총무팀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총무팀이라고 하면 사무용품 발주나 행사 기획 정도를 떠올리겠지만, 당시에는 훨씬 본질적인 문제를 다뤄야 했습니다. 직원들이 매일 쓰는 생필품 관리가 그 중심에 있었으니까요.그 시절 대한민국은 경제 성장의 한가운데 있었지만, 일반 가정에서 생필품이 '당연히' 갖춰진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마트에 가면 뭐든 살 수 있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죠.화장지가 사라진다 — 황당한 미스터..
친구 집 연탄보일러를 놓던 날 — 고등학생이 배운 삶의 진리 어머니에게 배운 관찰력나의 어머니는 눈썰미가 좋은 분이셨다. 주변의 작은 일도 놓치지 않고 유심히 살피셨다. 그 점을 이어받았는지 나도 그런 편이었다. 어떤 일이든 한 번 보면 그 원리와 방법을 파악하려 애쓰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었다.아버지는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에서 다치신 국가유공자로, 몸도 불편하시고 손재주도 없으신 편이었다. 그래서 집안의 크고 작은 수선일은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내 몫이 되었다.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새어 지붕을 수리해야 했고문짝이 삐걱거리면 경첩을 고쳐야 했으며벽에 금이 가면 시멘트를 발라야 했다남의 손을 빌릴 형편이 안 됐기에, 어머니와 나는 직접 부딪히며 배워 나갔다. 그 과정에서 관찰력과 손기술이 자연스럽게 늘어났다.처음으로 보일러를 직접 설치하다고등학교에 다..
세상은 나에게 딱 맞게 최적화되어 있다 — 호기심이 만든 40년 디지털 여정 먼지 쌓인 매킨토시 — 호기심의 시작1980년대 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회사 구석에 매킨토시 컴퓨터 한 대가 방치되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는 생소한 물건이었다.대부분 동료는 무관심했다."저거 어떻게 쓰는 거야?" "모르겠어. 복잡해 보여. 타자기도 잘 쓰는데 굳이 저걸 배워야 하나."하지만 나는 달랐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저게 뭘까.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만져보고 싶다.일과가 끝나면 그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영어로 빽빽하게 쓰인 매뉴얼을 뒤적이며, 이것저것 눌러봤다. 화면이 멈추면 다시 시작했다. 답답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오, 됐다!"글자가 입력됐다. 저장됐다. 다시 불러왔다. 신기했다. 조금씩 컴퓨터의 세계에 빠져들었다.그것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
운동장 배수관의 공포 —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그날의 기억 운동장이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1970년대 초, 우리 동네 아이들에게 학교 운동장은 세상의 전부였다. 요즘 아이들처럼 스마트폰도 없고, 학원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그 시절, 방과 후가 되면 책가방을 집에 던져놓고 운동장으로 달려가는 게 일상이었다. 오징어게임, 땅따먹기, 사방치기, 구슬치기… 이름만 들어도 그 시절 흙냄새와 땀 냄새가 코끝에 스치는 것 같다.햇살이 운동장을 가득 채우는 오후마다 우리는 지칠 줄 모르고 뛰어다녔다. 무릎이 깨지고 손바닥이 까져도 아프다는 소리 한 번 크게 지르고 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뛰고 구르는 것이 우리의 하루였다.그날도 그렇게 시작된 평범한 오후였다."저 관 지나가 볼래?" — 운명의 한마디한창 뛰어놀던 중, 친구 하나가 운동장 한가운데를 가..
월급봉투에서 디지털 지갑까지 — 돈의 형태가 바뀌면 삶도 바뀐다 월급봉투를 손에 쥐던 그 시절예전에는 월급날이 한 달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회사에서 직접 건네주는 월급봉투를 받아 드는 순간, 그 한 달 동안 흘린 땀과 수고가 한꺼번에 보상받는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봉투 안에 차곡차곡 담긴 현금을 세어보는 그 짧은 순간은 단순히 돈을 확인하는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의식이었다.집에 돌아오는 길은 여느 날보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문을 열면 가족들이 다른 날보다 더 반갑게 맞아주었고, 가장으로서 작은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 날만큼은 어깨를 으쓱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외식을 하거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사들고 들어오는 것도 월급날의 소소한 낙이었다..
문과 출신이 60대에 용접을 배운 사연 — "내가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나는 평생 문과였다.숫자보다 글이 편했고, 기계보다 사람이 익숙했다. 학창 시절엔 기술 시간에 뭘 만들어야 할 때마다 머리가 멍해졌다. 사회에 나와서도 손으로 뭔가를 고치거나 만드는 일은 늘 다른 사람의 몫이었다. 전구 하나를 갈아 끼우는 것도, 집에서 못 하나 박는 것도,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그런 내가, 예순이 넘어서 용접을 배웠다.처음 용접 기계 앞에 섰을 때를 지금도 기억한다. 마스크를 쓰고 전원을 켜는데, 심장이 두근거렸다. 불꽃이 튀고, 쇳물이 흐르고, 타는 냄새가 났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건가' 싶었다. 환갑이 넘은 사람이 용접이라니.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그런데 며칠 만에, 나는 용접을 할 수 있게 됐다.용접을 배우게 된 계기캠핑장을 운영하다 보면 고쳐야 할 것들이 끊임없이 생긴다. ..
직접 양수기를 고치고 창고를 지으며 배운 것 — 손재주는 나이와 상관없다 캠핑장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양수기가 고장났다.소리는 나는데 물이 올라오지 않았다. 아침 일찍 손님들이 세면장을 쓰러 가기 전에 고쳐야 했다. 가장 먼저 한 건 수리 기사에게 전화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른 곳에 전화했더니 "오늘은 어렵고 내일 아침에 갈 수 있다"고 했다.내일 아침이면 늦는다.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한다.어쩔 수 없이 유튜브를 켰다. '양수기 물 안 나올 때 원인'을 검색했다. 영상이 여러 개 나왔다. 영상을 틀고, 잠시 멈추고, 실제 양수기를 들여다보고, 다시 영상을 보고. 그렇게 한 시간 반을 씨름했다. 원인은 임펠러 쪽 이물질이었다. 분해하고, 청소하고, 다시 조립했다.물이 올라왔다.그 순간 느낀 것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처음엔 아무것도 ..
퇴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 제천 캠핑장으로 인생 2막을 연 결정 퇴직하던 날, 동료들이 케이크를 사왔다."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편하게 쉬세요." "남은 인생 즐기세요."웃으면서 감사하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즐긴다'는 게 무엇인가. '편하게 쉰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 사실 그날 나는 기쁘기보다 막막했다. 30년 넘게 다닌 회사를 그만두는 날이, 왜 이렇게 허전할까.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내일 아침 알람을 맞출 필요가 없었다. 갈 곳이 없었다. 해야 할 일도 없었다. 그 자유가, 이상하게 불편했다."이제 뭐 하지?"라는 질문이 가장 무서웠다많은 사람들이 퇴직을 꿈꾼다. 더 이상 출퇴근하지 않아도 되는 삶, 상사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삶,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삶. 그런데 막상 그 삶이 시작되고 나면, 놀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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