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25. 13:57ㆍ카테고리 없음
퇴직하던 날, 동료들이 케이크를 사왔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편하게 쉬세요." "남은 인생 즐기세요."
웃으면서 감사하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즐긴다'는 게 무엇인가. '편하게 쉰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 사실 그날 나는 기쁘기보다 막막했다. 30년 넘게 다닌 회사를 그만두는 날이, 왜 이렇게 허전할까.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내일 아침 알람을 맞출 필요가 없었다. 갈 곳이 없었다. 해야 할 일도 없었다. 그 자유가, 이상하게 불편했다.
"이제 뭐 하지?"라는 질문이 가장 무서웠다
많은 사람들이 퇴직을 꿈꾼다. 더 이상 출퇴근하지 않아도 되는 삶, 상사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삶,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삶. 그런데 막상 그 삶이 시작되고 나면, 놀랍게도 그 자유가 공허함으로 변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나에게 그 순간은 퇴직 후 첫 번째 월요일 아침이었다.
평생 월요일 아침은 분주했다. 눈을 뜨면 오늘 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 가득했고, 씻고 밥 먹고 나가는 루틴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눈을 떴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하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했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하며 살지?"
이 질문이 사실 퇴직 이후 가장 무서운 질문이다. 직함이 없어지고, 역할이 사라지고, 매일 만나던 동료들과 연락이 뜸해지면, 남는 건 오직 '나'뿐이다. 그 '나'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갑자기 아무것도 모르게 되는 경험. 퇴직을 앞둔 사람이라면, 이 순간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 하필 캠핑장이었나
캠핑은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주말마다 아내와 함께 텐트를 들고 이곳저곳을 다녔다. 자연 속에 앉아 밥을 먹고, 모닥불을 피우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그 시간이 좋았다. 회사 생활의 스트레스를 씻어내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생업으로 삼으면 어떨까?"
물론 주변의 반응은 냉담했다. "캠핑장 사업이 쉬운 줄 알아요?" "요즘 경쟁도 심한데." "나이도 있는데 왜 굳이 힘든 길을 가요?" 걱정해주는 말들이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결정이 내려진 뒤였다.
충북 제천. 청풍호 근처, 산이 둘러싸고 맑은 물이 흐르는 그 땅에 캠핑장을 열기로 했다.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달랐다
캠핑을 즐기는 것과 캠핑장을 운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손님이 오기 전에 전기를 점검해야 했다. 배수가 잘 되는지 확인해야 했다. 화장실 수도가 새면 고쳐야 했고, 잔디밭이 울퉁불퉁하면 손을 봐야 했다. 겨울엔 동파를 막아야 했고, 여름엔 모기 방제를 해야 했다. 캠핑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몰랐을 일들이, 운영자가 되니 모두 내 몫이 됐다.
처음엔 뭐든 전문가를 불렀다. 전기 기사, 배관 기사, 건축 기사. 그런데 부를 때마다 돈도 돈이지만,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배우기로 했다. 유튜브를 켜고 양수기 수리 영상을 찾았다. 처음엔 용어조차 몰라서 열 번도 넘게 되돌려봤다. 그러다 직접 해보니 됐다. 무너진 울타리는 직접 용접을 배워서 고쳤다. 창고도 내 손으로 지었다. 손재주가 원래 있었던 게 아니다. 필요하니까 배웠고, 배우니까 할 수 있게 됐다.
그 경험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 나이가 들면 배우는 게 느려지는 게 아니라, 배워야 할 이유가 약해지는 것이다. 이유가 생기면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캠핑장에서 만난 사람들
캠핑장 사업의 예상치 못한 선물은 사람이었다.
젊은 커플이 왔다가 단골이 됐다.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이 해마다 다시 찾았다. 혼자 텐트를 치고 며칠씩 머무는 여행자도 있었다. 그들과 모닥불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회사 다닐 때는 전혀 몰랐던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떤 날은 캠핑장을 찾아온 손님이 뜻밖의 질문을 했다. "사장님, 스마트폰으로 뭔가 배우시는 거예요?" 내가 항상 뭔가를 검색하거나 영상을 보고 있으니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다. "네, 맞아요. 오늘은 IoT 공부 중이에요." 그랬더니 그 손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캠핑장 사장님이 IoT를요?"
그렇다. 캠핑장 사장님이 IoT를 공부한다. ChatGPT로 유튜브 대본을 쓴다. SUNO로 음악을 만든다. 이상한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 2막은 1막의 연속이다
퇴직을 하고 캠핑장을 열면서, 나는 하나를 깨달았다.
인생 2막은 1막과 완전히 다른 무대가 아니다. 1막에서 배우고 쌓아온 것들이 2막의 토대가 된다. 회사에서 사람을 대하던 경험이, 손님을 맞이할 때 살아난다. 위기 상황을 침착하게 넘기던 습관이, 예상치 못한 사고를 처리할 때 빛난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던 용기가, 용접을 배우고 IoT를 공부할 때 다시 작동한다.
퇴직은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이었다. 남의 시선으로 살던 인생 1막을 마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내 방식대로 살기 시작하는 진짜 인생의 출발점이었다.
퇴직을 앞둔 분들께
만약 지금 퇴직을 앞두고 있거나, 이미 퇴직을 했는데 그 공허함이 낯설다면, 이 말을 드리고 싶다.
그 공허함은 정상이다. 당연한 감정이다. 그리고 그 감정을 인정한 다음에 물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무엇을 배우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가?"
그 질문들의 답이, 인생 2막의 지도가 된다.
나는 캠핑이 좋았다. 배우는 게 좋았다.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았다. 그래서 제천에 캠핑장을 열었다. 거기서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게 지금 내 인생 2막의 전부다.
무대의 막은,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