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25. 13:56ㆍ카테고리 없음

나는 매일 아침 컴퓨터 앞에 앉는다.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어제 저장해둔 네이버 메모를 열어본다. 거기엔 어제 유튜브를 보다가 메모해둔 단어, 뉴스를 읽다가 모르는 개념을 적어둔 문장, 그리고 "이건 꼭 나중에 배워야지" 하고 남긴 짧은 메모들이 빼곡하다. 지금까지 그렇게 쌓아온 메모가 무려 5,360개다.
68세. 많은 사람들이 이 나이를 "이제 쉬어도 될 때"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동의할 수가 없다. 배움을 멈추는 순간이 곧 삶이 멈추는 순간이라는 걸, 나는 몸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퇴직 후 처음 느낀 공허함
30년 넘게 일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갈 곳이 있었고, 해야 할 일이 있었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퇴직을 하고 나니, 갑자기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달력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고, 하루가 이렇게 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이제 편하게 쉬세요"라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위로가 되지 않았다. 쉰다는 게 무엇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게 정말 행복한 건가. 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답을 찾은 건 뜻밖의 곳에서였다. 캠핑장이었다.
제천 캠핑장에서 다시 시작된 배움
충북 제천, 산과 물이 어우러진 곳에 캠핑장을 열었다. 처음엔 단순히 "자연 속에서 여생을 보내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캠핑장을 운영하다 보니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전기 배선은 어떻게 하는지, 양수기가 고장 났을 때 어떻게 고치는지, 창고는 어떻게 짓는지.
회사에서 30년을 일했지만, 그런 실용적인 기술은 배운 적이 없었다. 처음엔 전문가를 불렀다. 그런데 부를 때마다 드는 비용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답답한 건 "왜 나는 이걸 모를까"라는 자괴감이었다.
그래서 배우기로 했다.
유튜브를 켜고 양수기 수리 방법을 찾았다. 처음엔 용어도 몰라서 영상을 열 번도 넘게 되돌려봤다. 그러다 직접 해보니 됐다. 고장 난 양수기를 내 손으로 고쳤을 때의 그 쾌감이란,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그날 나는 처음 알았다. 배움의 진짜 보상은 지식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는 것을.
배움은 나이와 상관없다는 증거
그 이후로 나는 멈추지 않았다. 용접을 배웠다. 처음에 용접 기계를 앞에 두고 얼마나 막막했는지 모른다. 불꽃이 튀고 쇳물이 흐르는 걸 보면서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몇 주를 연습하고 나니, 캠핑장에 필요한 간단한 구조물을 직접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다음엔 IoT를 배웠다. 캠핑장 전등을 스마트폰으로 제어하고 싶어서였다. 인터넷을 뒤지고, 유튜브를 보고, 전문가 카페에 질문을 올렸다. 결국엔 중국에 있는 아들에게 영상 통화를 하면서 캠핑장 불을 켜고 끄는 걸 보여줄 수 있게 됐다. 그 순간 아들이 "아버지, 대단하다"라고 했을 때, 68년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 중 하나였다.
ChatGPT가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에서 "어렵다", "나이 들어서 그런 거 배워서 뭐하냐"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한 글자씩 프롬프트를 입력하며 AI와 대화하는 법을 익혔고, 이제는 유튜브 대본도 ChatGPT와 함께 쓴다. SUNO로 음악을 만들고, 제미나이로 그림을 그린다.
"깨달아야 보입니다"
책을 쓰면서 이 말을 제목으로 쓴 챕터가 있다. 깨달아야 보인다. 이 한 문장이 내 배움 철학의 전부다.
우리는 종종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자위한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모르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모른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그걸 배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묻는다. "오늘은 무엇을 배울까?"
이 질문이 하루를 살아있게 만든다. 뭔가를 배우러 가는 날은 아침에 눈이 빨리 떠진다. 오늘 배울 것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설렘이 은퇴 이후의 내 삶을 전혀 다른 빛깔로 바꿔놓았다.
5,360개의 메모가 말해주는 것
지금 내 네이버 메모엔 5,360개의 기록이 있다. 강의를 들으며 적은 것도 있고, 유튜브를 보다 멈추고 적은 것도 있고, 책을 읽다 밑줄 친 문장을 옮겨 적은 것도 있다. 어떤 날은 단 세 줄짜리 메모 하나가 전부인 날도 있다. 하지만 그 세 줄을 적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의미 있다.
그 메모들이 모여 책이 됐다. 『인생이라는 무대의 막은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책. 68년을 살아온 내가, 아직 내려오지 않은 이 무대 위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배움을 멈추지 않는 이유
사람들은 가끔 내게 묻는다.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요? 이제 편하게 쉬면 안 돼요?"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배우는 게 쉬는 겁니다."
진심이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될 때, 어제 몰랐던 것을 오늘 할 수 있게 될 때, 그 기쁨이 어떤 휴식보다 나를 더 편안하게 만든다. 몸은 피곤할지 몰라도, 마음은 가득 찬다.
68세에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 구독자가 많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도 동네 할머니들에게 스마트폰 쓰는 법을 알려드렸다.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괜찮다. 오늘 하나를 배웠고, 하나를 나눴으니, 그것으로 오늘은 충분하다.
내일 아침에도 나는 컴퓨터 앞에 앉을 것이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메모를 열고, 또 물을 것이다.
"오늘은 무엇을 배울까?"
인생이라는 무대의 막은,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