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배수관의 공포 —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그날의 기억

2026. 7. 27. 12:53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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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이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

1970년대 초, 우리 동네 아이들에게 학교 운동장은 세상의 전부였다. 요즘 아이들처럼 스마트폰도 없고, 학원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그 시절, 방과 후가 되면 책가방을 집에 던져놓고 운동장으로 달려가는 게 일상이었다. 오징어게임, 땅따먹기, 사방치기, 구슬치기… 이름만 들어도 그 시절 흙냄새와 땀 냄새가 코끝에 스치는 것 같다.

햇살이 운동장을 가득 채우는 오후마다 우리는 지칠 줄 모르고 뛰어다녔다. 무릎이 깨지고 손바닥이 까져도 아프다는 소리 한 번 크게 지르고 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뛰고 구르는 것이 우리의 하루였다.

그날도 그렇게 시작된 평범한 오후였다.


"저 관 지나가 볼래?" — 운명의 한마디

한창 뛰어놀던 중, 친구 하나가 운동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배수로 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야, 우리 저 관 지나가 볼래?"

처음엔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 콘크리트 배수관은 운동장을 통째로 가로질러 묻혀 있었는데, 어림잡아 길이가 70~80미터는 족히 됐다. 어린아이가 몸을 잔뜩 웅크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관 지름도 작았다. 어두컴컴한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 시절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겁쟁이'로 찍히는 것은 가장 치욕스러운 일 중 하나였다. 한 번 겁쟁이 딱지가 붙으면 한동안 놀림을 각오해야 했다. 서로 눈치를 보던 우리 다섯 명은 결국 아무도 먼저 빠지겠다고 말하지 못한 채, 순서를 정해 들어가기로 했다.

나는 세 번째였다.


입구에서 느낀 첫 번째 두려움

첫 번째 친구가 관 입구에 쭈그려 앉아 안을 들여다봤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국 몸을 밀어 넣었다. 두 번째 친구도 뒤를 따랐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관 입구는 생각보다 더 좁고 어두웠다. 밖에서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무릎을 꿇고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 두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기어들어 가자, 차갑고 텁텁한 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콘크리트 바닥은 오랜 세월 물이 흐른 탓에 이끼가 끼어 미끄러웠다.

처음 10미터 정도는 그런대로 버텼다. 입구 쪽에서 빛이 조금이나마 들어왔고, 앞에 친구들이 있다는 것도 위안이 됐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였다.


완전한 어둠 속으로 — 공포가 밀려오다

점점 깊이 들어갈수록 주위가 완전한 어둠으로 바뀌었다. 손을 눈앞에 가져다 대도 보이지 않을 만큼 칠흑 같은 어둠. 그리고 사방을 가득 채운 침묵. 멀리서 앞에 간 친구들이 기어가는 소리만 둔탁하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공포는 그렇게 천천히, 그리고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여기서 막히면 어떡하지? 앞 친구가 쓰러지면? 내가 더 이상 못 움직이면?'

좁은 관 속에서 몸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뒤로 기어나가려 해도, 뒤에는 네 번째 친구가 이미 들어와 있었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상황. 출구까지 무조건 가야만 했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러다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

어린 나이에 느낀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 감각은 생생하다. 숨이 가빠오고,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고,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앞에 간 친구가 어둠 속에서 느릿느릿 기어가는 것 같았다.


"빨리 가라고!" — 공포가 폭발하던 순간

결국 나는 소리를 질렀다.

"야! 빨리 좀 가라고! 빨리!"

좁은 콘크리트 관 속에서 질러댄 그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사방으로 쩌렁쩌렁 울렸다. 그 울림이 오히려 공포를 배로 키웠다. 내 목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앞뒤에 있는 친구들도 서로 소리를 질러댔고, 그 좁은 관 속은 순식간에 아이들의 비명과 외침으로 가득 찼다.

시끄러울수록, 무서울수록, 서로를 향해 더 크게 소리를 쳤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하면 더 무섭다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에는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그 공포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으니까.


한 줄기 빛 — 마침내 출구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마 10분도 채 안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내 기억 속에서 몇 시간처럼 늘어나 있다. 저 멀리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출구였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한 명씩 기어나오는 우리는 하나같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무릎과 손바닥은 긁혀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누구 하나 말이 없었다. 탈진한 것처럼 잠시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아 있었다.

누군가 먼저 조용히 말했다.

"…다시는 하지 말자."

모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십 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

그 뒤로 우리는 그 배수관 앞을 지날 때마다 서로 눈빛만 교환했다. 말은 필요 없었다. 그날 우리가 느낀 것이 무엇인지, 서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살면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기쁜 일, 슬픈 일, 후회스러운 일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배수관 속에서 느꼈던 공포만큼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차갑고 어두운 콘크리트 관 속, 사방으로 울려 퍼지던 아이들의 비명 소리, 저 멀리 보이던 한 줄기 빛.

어린 시절의 무모함이 빚어낸 그날의 경험은,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순수한 공포였는지도 모른다. 겁쟁이로 불리기 싫어 들어간 그 관 속에서, 우리는 모두 사실 겁쟁이였다. 그리고 그것이 부끄럽지 않다. 그만큼 살아 있었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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